가을, 그 순간의 풍경

가을, 그 순간의 풍경

가을은 언제부터인가 특별한 계절이 되었다. 어릴 적엔 그저 시원한 바람과 함께 나뭇잎이 떨어지는 정도로 느껴졌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을은 점점 더 많은 의미를 담은 계절이 되었다. 이 계절을 맞이할 때마다 나에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바람에 날리는 은행잎, 그 위에 놓인 나의 발자국, 그리고 저 멀리 푸른 하늘과 함께 넓게 펼쳐진 들판. 가을은 늘 그렇게 마음속 깊은 곳에 작은 흔적을 남기며 지나간다.

어느 날, 가을의 한가운데서 길을 걷다가 문득 한 장면을 떠올렸다. 나는 고요한 공원 벤치에 앉아, 노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주위에는 사람들이 그 모습에 취해 나뭇잎을 주우러 다니거나, 손에 카메라를 들고 그 순간을 담고 있었다. 그들 속에서 나는 그저 한 사람의 일상이 되어, 저마다의 일과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가을을 느끼고 있었다. 아마 그 순간이 내가 경험했던 가장 평화로운 순간 중 하나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왜 가을을 그렇게 사랑하는 걸까? 나 또한 이 계절을 좋아한다. 여름의 무더위가 지나고,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아직 오지 않은 이 중간, 모든 것이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 이 때, 나는 마음속에 편안함을 느낀다. 뭔가 새롭고, 또 지나간 시간들이 차례차례 떠오르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면, 자연스럽게 지난날들이 떠오르고 그때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어렸을 적 학교 운동장에서의 작은 소풍, 그리고 친구들과 나누었던 사소한 이야기들이 가을 바람과 함께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온다.

그렇다고 해서 가을이 무조건 행복한 기억만을 남기는 계절은 아니다. 가을은 늘 다른 의미를 지닌다. 깊어가는 계절 속에서, 나는 때때로 외로움과 마주하게 된다. 사람들은 가을을 보면서 그리움이나 아쉬움을 느끼기도 한다. 아마도 그게 가을이 가진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가을이 주는 쓸쓸함과 그리움은 고요한 아름다움과 섞여 있다. 나 역시 이 계절을 맞이할 때마다 한숨을 쉬게 되는 순간이 종종 있다.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나,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간절함이 나를 잠시 멈추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나를 마냥 우울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가을의 쓸쓸함 속에서 나는 오히려 더 많은 성찰을 하게 된다. 내가 지나온 날들이 어떤 의미였는지,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 생각들은 마치 지나가는 구름처럼 잠시 떠오르다 사라지기도 하고, 때때로 마음속 깊은 곳에 오래도록 남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이 내게 주는 힘은 분명하다. 나는 그저 지나간 시간이 나를 성장시켜 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또한 가을은 주변을 돌아보게 만든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아랫집 할머니의 꽃밭에서 피어나는 국화꽃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길을 걷다가 만나는 길고양이의 무심한 발걸음을 보며 나는 그저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 이렇게 간단한 일상 속에서 나는 가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된다. 여름의 덥고 긴 날들이 지나고, 겨울의 추위가 올 때까지 나는 가을에 머물며 작은 행복을 찾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가을이 단지 지나가는 계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오기 전, 그 틈새에서 가을은 나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 지나온 시간에 대해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날들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가을이다. 그동안 내가 놓쳤던 것들을, 지나치기만 했던 작은 순간들을 이제야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가을은 내게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다.

매일 바쁘게 살다 보면, 우리는 자주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하지만 가을은 그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이 계절을 맞이하면서 나는 한걸음 물러서서 내 삶을 돌아보고,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그렇게 가을은 나를 점검하는 시간이 된다. 시간이 지나가면 잊히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올해도 가을이 다시 찾아왔다. 나는 다시 그 벤치에 앉아, 바람에 날리는 은행잎을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 계절을 만끽하며, 고요한 마음으로 가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