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한가운데

가을의 한가운데

어느새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여름의 뜨거운 햇살과 긴 장마가 지나고, 이제 가을의 선선한 바람과 함께 우리를 맞이한다. 자연은 계절마다 그 나름의 색을 입히며, 그때그때 다르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여름이 지나고 나면, 가을은 언제나 그리운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가을이 내게 주는 위로와 성찰은 매년 다르게 다가온다.

가을이 오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가을의 정취’다. 찬 바람이 불어오는 날, 나는 종종 혼자 길을 걷는다. 그 길은 내가 매일 지나치는 골목일 수도 있고, 한적한 시골길일 수도 있다. 그런데 가을이 되면 그 길은 늘 새로운 풍경으로 변한다. 나뭇잎은 이제 녹색에서 황금빛, 붉은색, 갈색으로 변하고, 바람은 그들과 함께 춤을 추며 지나간다. 나무 위의 나뭇잎들이 땅에 떨어지며 살며시 발밑에 쌓인다. 그 소리, 그 냄새, 그 색감은 모두 가을의 조용한 속삭임 같다.

이러한 자연의 변화가 내 마음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여름에는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 강하게 느껴지고, 그에 따라 심리적으로도 바쁜 하루하루가 계속된다. 하지만 가을이 되면, 그 모든 것이 잠시 멈춘 듯한 느낌을 준다. 한 계절이 끝나가며 자연은 그 자체로 정리하고,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 같다. 인간도 그러한 자연의 흐름을 따라가며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을은 그 멈춤의 계절이다.

길을 걷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면, 맑고 깨끗한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투명한 하늘은 여름의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가을 하늘은 마치 가벼운 바람에 휘날리는 종이처럼 여유롭고, 한편으로는 간결하다. 여름 하늘의 강렬한 햇살 속에서는 불안한 마음을 숨길 곳이 없었던 것 같은데, 가을 하늘에서는 그런 마음도 조금은 놓아도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가을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고민을 자연스럽게 하게 만든다. 연말이 다가오면 한 해의 끝자락에서 그동안 했던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했던 일들, 놓친 일들, 지나쳐버린 시간들. 그 모든 것이 잠시 멈춘 가을날, 땅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내 마음에 쌓여간다. 가을이 주는 것은 그저 아름다운 풍경만이 아니다. 그 속에 숨겨진 묵직한 성찰과 다가오는 겨울을 맞이하는 준비가 있다.

그러면서도 가을은 여전히 나에게 위로의 계절이다. 바람이 불고, 해가 짧아지고, 하루가 점점 어두워지면, 그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한 해를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잃어버린 시간이나 놓친 기회들에 대해서 애써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 지나간 일들은 그대로 두고, 다가오는 일들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기로 한다. 그런 마음가짐이 내게 가을을 사랑하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가을은 언제나 그 시기에 맞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붉게 물든 단풍, 파란 하늘, 바람에 실려 오는 낙엽의 소리, 그리고 저물어 가는 해.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풍경 속에 담긴 시간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간은 늘 흘러가고 있지만, 그 흐름 속에서도 우리는 잠시 멈추어 한숨 돌릴 수 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다시 일어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수 있다.

그래서 가을은 내게 언제나 마음의 여유와 위로를 준다. 이 계절은 대개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게 하는 기회를 준다. 그 시간을 통해 내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는다. 또 한 번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겠지만, 그때까지 나는 이 가을의 평온함과 아름다움을 마음속 깊이 새겨두고 싶다. 그렇게 가을은 내게 단순한 계절의 변화 이상으로,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되새기게 하는 시간이다.